안개를 사랑한 파도, 영화 '헤어질 결심'

2025. 2. 19. 22:36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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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 포스터
영화 헤어질 결심 포스터

 

2022년, 스크린에 짙은 안개처럼 피어오른 멜로 영화 한 편이 관객들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바로 박찬욱 감독의 섬세하고 매혹적인 멜로 영화, '헤어질 결심'입니다. 산에서 벌어진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해준'(박해일)과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의 만남은 의심과 관심, 경계와 호감 사이를 넘나드는 미묘한 감정의 파도를 일으키며 관객들을 깊숙이 끌어들였습니다.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이라는 영예와 함께 작품성을 인정받은 '헤어질 결심'은, 개봉 후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며 진한 여운을 남기고 있습니다.

 

1. 산에서 시작된 의심, 바다로 깊어진 사랑, '헤어질 결심' 줄거리

이야기는 안개 자욱한 산 속, 기도수라는 남자의 추락사 사건으로 시작됩니다. 부산 지역 형사 장해준(박해일)은 사건 수사를 맡게 되고, 사망자의 젊은 아내 서래(탕웨이)를 만나 조사를 시작합니다. 서래는 중국 출신으로 한국 말이 서툴지만, 침착하고 담담한 태도로 수사에 협조합니다. 남편의 죽음 앞에서 슬픔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 서래의 모습은 해준에게 의심을 불러일으키지만, 동시에 묘한 호기심과 관심을 자극합니다. 해준은 서래를 용의선상에 올리고 주변을 탐문하지만, 알리바이는 확실해 보입니다. 수사를 진행할수록 해준은 서래에게 점점 더 깊이 빠져들고, 그녀의 미스터리한 매력에 매혹됩니다. 서래 또한 자신을 의심하면서도 세심하게 배려하는 해준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형사와 용의자라는 위험한 관계 속에서 두 사람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결국 금지된 감정에 휩싸입니다.

 

사건은 자살로 종결되지만, 해준의 마음속에는 서래에 대한 의심과 사랑이 뒤섞인 미결 사건처럼 남아있습니다. 그는 서래를 잊지 못하고 끊임없이 그녀를 떠올리며 혼란스러워합니다. 13개월 후, 해준은 이포라는 작은 도시로 이사를 가고, 그곳에서 우연히 서래와 재회합니다. 새로운 남편과 함께 나타난 서래의 등장은 해준의 마음에 다시 한번 파문을 일으키고, 두 사람의 관계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서래의 새로운 남편이 죽은 채로 발견되면서 해준은 또다시 사건 수사를 맡게 되고, 본능적으로 서래가 범인임을 직감합니다. 하지만 과거의 사건처럼 이번에도 서래는 결정적인 증거를 남기지 않았고,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져듭니다. 영화는 두 번째 사건을 통해 해준과 서래의 감정선을 더욱 깊이 파고들고, 사랑과 의심,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헤어질 결심'은 단순한 멜로 영화를 넘어, 사랑과 상실, 집착과 헌신, 그리고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썸네일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컷
썸네일 헤어질 결심 스틸컷

2. 입소문으로 이룬 흥행 신화, '헤어질 결심' 흥행 성적

'헤어질 결심'은 개봉 초기 흥행 성적이 기대만큼 높지 않았지만, 작품에 대한 호평과 입소문이 확산되면서 점차 관객수가 증가하는 저력을 보였습니다. 총 제작비 130억 원 가량이 투입된 '헤어질 결심'은 해외 선판매로 손익분기점을 120만 명 수준까지 낮추었지만, 개봉 초반 분위기는 100만 관객 돌파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영화 개봉 후 관객들의 폭발적인 재관람 열풍과 N차 관람 붐이 일어나면서 흥행 반전에 성공했습니다.

 

최종적으로 '헤어질 결심'은 189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쾌거를 달성했습니다. 이는 팬데믹 이후 침체되었던 한국 영화 시장에서 이례적인 성공 사례로 평가받고 있으며, 특히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헤어질 결심'의 흥행 성공은 관객들의 입소문과 자발적인 지지, 그리고 작품의 힘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 이후 해외 193개국에 선판매되는 성과를 거두며 글로벌 시장에서도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3. 극찬과 난해함 사이, 관객과 평론가의 엇갈린 반응

'헤어질 결심'은 평론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호불호가 갈리는 편입니다. 칸 영화제 수상 이후 국내 개봉 전부터 기대감이 높았던 만큼, 영화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헤어질 결심'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섬세하고 세련된 연출력, 박해일과 탕웨이의 뛰어난 연기 앙상블, 미스터리와 멜로 장르의 절묘한 조합, 그리고 사랑과 상실에 대한 깊이 있는 메시지 등 다양한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특히, 영화가 전하는 은유와 상징, 미장센 등 영화적 미학에 대한 찬사가 많았으며, 박찬욱 감독의 최고작 중 하나로 꼽는 평론가들도 있었습니다.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최고 점수를 기록하며 감독상을 수상한 것은 작품에 대한 평론가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입증하는 결과입니다.

 

관객들의 반응은 평론가들과 달리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었습니다. 영화를 극찬하는 관객들은 섬세한 연출, 배우들의 연기, 미스터리한 분위기, 그리고 여운 남는 결말 등에 만족감을 표현했습니다. 특히, '말 없이 그림으로 모든 것을 말하는 영화', '볼 때마다 새로운 의미가 보이는 영화', '인생 영화 등극' 등 극찬 후기가 이어졌으며, N차 관람 열풍을 주도했습니다. 반면, 일부 관객들은 영화의 난해함, 불친절한 스토리 전개, 그리고 멜로 영화로서의 부족함 등을 지적했습니다. 특히, 탕웨이의 한국어 대사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의견, 영화의 호흡이 지루하게 느껴진다는 의견, 그리고 결말이 모호하고 답답하다는 의견 등 불호 후기도 존재했습니다. 일반적인 멜로 영화를 기대했던 관객들에게는 '헤어질 결심'의 미스터리 적인 분위기와 열린 결말이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처럼 엇갈린 평가에도 불구하고 '헤어질 결심'이 흥행에 성공한 것은 영화의 독창적인 매력과 작품성이 관객들에게 어필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중적인 오락 영화와는 거리가 있지만, 깊이 있는 메시지와 뛰어난 만듦새는 관객들에게 새로운 영화적 경험을 선사했으며, 입소문과 N차 관람을 통해 흥행 동력을 확보했습니다. '헤어질 결심'의 흥행 성공은 한국 영화 시장에서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작품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컷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컷 2

4. 안개처럼 모호한 사랑, 파도처럼 격렬한 감정, 개인적인 감상

개인적으로 '헤어질 결심'은 한 번 본 후에는 쉽게 정의내리기 어려운, 곱씹을수록 새로운 의미가 발견되는 매혹적인 영화입니다. 처음 볼 때는 미스터리 사건 속 멜로 라인에 집중했지만, 두 번, 세 번 볼수록 영화 속 숨겨진 상징과 은유, 그리고 인물들의 미묘한 감정선에 더욱 깊이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영화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를 넘어, 인간의 심리, 욕망, 그리고 삶의 본질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영화 전반에 걸쳐 짙게 드리워진 안개는 해준과 서래의 사랑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안개는 앞을 분간하기 어렵게 만들고, 진실을 가립니다. 해준과 서래의 감정 또한 안개처럼 모호하고 불확실합니다. 의심과 관심, 호감과 경계 사이에서 갈등하는 두 사람의 마음은 쉽게 드러나지 않고, 관객들은 안개 속을 헤매듯 그들의 감정을 쫓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모호함은 영화에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더하고, 관객들에게 상상의 여지를 넓혀줍니다. 

 

영화는 산과 바다라는 대비되는 공간을 통해 두 인물의 심리 상태와 관계 변화를 효과적으로 보여줍니다. 기도수의 사건이 발생한 산은 서래를 상징하고, 해준이 이주한 이포의 바다는 해준을 상징합니다. 산은 높고 가파르며 안개가 잦고, 바다는 넓고 깊으며 파도가 칩니다. 서로 전혀 다른 두 공간처럼 해준과 서래는 서로를 이해하는데 있어 넘어서기 힘든 벽을 느끼지만, 동시에 서로 다르기에 마치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강렬하게 이끌립니다. 영화 후반부, 서래가 바다에 자신을 묻는 장면은 산과 바다, 서래와 해준의 관계가 결국 극복할 수 없는 운명적인 비극으로 끝맺음을 암시하는 듯합니다.

 

영화 제목 '헤어질 결심'은 이별을 결심하는 순간과 동시에 사랑을 결심하는 역설적인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해준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서래를 의심하지만, 결국 그녀에게 사랑에 빠지고 사건은 미결로 남습니다. 서래 또한 해준에게 다가가지만, 결국 그와의 사랑을 포기하고 자신을 바다에 묻는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두 사람의 사랑은 시작과 동시에 이별을 예감하고, 영원히 풀리지 않는 미결 사건처럼 마음속에 남아 우리에게 고통을 줍니다. 영화는 사랑의 본질적인 불확실성과 비극성을 '미결'이라는 모티프를 통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헤어질 결심'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탕웨이와 박해일 두 배우의 섬세한 연기입니다. 두 배우는 절제된 대사와 미묘한 표정, 그리고 강렬한 눈빛 교환만으로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선을 완벽하게 표현해냅니다. 특히, 탕웨이 배우는 서툰 한국어 대사 속에서도 눈빛과 표정만으로 서래의 미스터리함, 슬픔, 그리고 해준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거의 완벽에 가깝게 전달합니다. 박해일 배우 또한 해준의 내면 갈등과 혼란스러움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영화의 품격을 더합니다. 두 배우의 뛰어난 연기 호흡은 '헤어질 결심'을 단순한 멜로 영화를 넘어 섬세하고 깊이 있는 심리 드라마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컷 3
헤어질 결심 스틸컷 3

5. 캐스팅 비화부터 숨겨진 의미까지, '헤어질 결심' 비하인드 스토리

'헤어질 결심'은 제작 단계부터 개봉 후까지 다양하고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 속 숨겨진 의미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영화 감상의 재미를 더할 수 있는 몇 가지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합니다.

 

'헤어질 결심'은 초기 기획 단계에서 형사의 치정 멜로 이야기로 구상되었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정서경 작가에게 한 형사의 관할 지역에서 첫 남편이 죽고 이사했는데 또다시 남편이 죽게 된 여자의 이야기를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정서경 작가는 멜로 장르에 자신이 없어 처음에는 시나리오 작업을 망설였다고 합니다. 결국 감독과 작가의 끊임없는 고민과 협업 속에서 지금의 '헤어질 결심' 시나리오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초기 기획은 치정 멜로였지만, 영화는 단순한 멜로 장르를 넘어 인간의 심리와 본질을 탐구하는 심오한 드라마로 발전했습니다.

 

해준 역의 배우 박해일이 모든 출연자 중 가장 먼저 캐스팅되었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시나리오 작업 전부터 박해일을 염두에 두고 캐릭터를 구상했으며, 박해일의 깨끗하고 담백한 이미지, 그리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섬세한 모습에서 해준 캐릭터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박해일 또한 박찬욱 감독의 작품에 대한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출연을 결정했으며, 캐릭터 분석과 각본 작업에 물심양면 참여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박해일에 대해 "본인이 되고 싶은 욕구가 있는 캐릭터"라고 언급하며 해준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서래 역을 맡은 탕웨이는 대부분의 대사를 한국어로 소화해야 했습니다. 한국어가 서툰 탕웨이는 촬영 전부터 한국어 공부에 매진했으며, 현장에서도 끊임없이 한국어 대사를 연습하는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탕웨이의 노력 덕분에 서래의 서툰 한국어 대사는 캐릭터의 매력을 더하는 요소가 되었으며, 영화의 리얼리티를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정서경 작가는 탕웨이가 한국어를 배우는 속도가 자신이 중국어를 배우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헤어질 결심'에는 단 한 번의 키스 씬만 등장합니다. 박찬욱 감독은 애초에 해준과 서래의 육체적인 교류를 최소화하고자 했으며, 키스 씬 조차 넣지 않으려고 고민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두 인물의 감정선을 극대화하기 위해 고심 끝에 단 한 장면의 키스 씬만 남겨두었습니다. 대신 영화는 두 인물의 섬세한 눈빛 교환과 미묘한 표정 변화, 그리고 상징적인 미장센을 통해 사랑의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해준의 아내 정안(이정현)은 영화 속에서 비교적 짧게 등장하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캐릭터입니다. 정서경 작가는 원래 정안이 해준의 바람을 눈치채고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장면을 쓰고 싶었지만, 박찬욱 감독은 "너무 무섭다"며 삭제를 결정했습니다. 대신 영화에서는 정안이 이주임과 함께 떠나는 장면으로 정안의 복잡한 심경을 간접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만약 정안의 이야기가 더 자세하게 다뤄졌다면 영화의 분위기가 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해준의 후배 형사 수완 역을 맡은 고경표는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을 2시간 동안 촬영하며 2갑 이상의 담배를 피우는 투혼을 보였습니다. 고경표는 반항적인 수완 캐릭터를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흡연 씬 촬영에 열정적으로 임했으며, 덕분에 수완은 영화에 활력을 더하는 매력적인 캐릭터로 탄생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해준이 바닷가에서 서래를 찾는 모습으로 끝맺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단지 "한 남자가 바닷가에서 한 여자를 찾는 장면"을 썼을 뿐인데, 실제 촬영을 할 때에는 인물의 슬픔에 북받쳐 눈물을 글썽였다고 합니다. 이처럼 '헤어질 결심'의 마지막은 해준의 상실감과 애절함을 극대화하며 관객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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